성서속 기행

라기스, 라히쉬(Lachish)

광야의 들꽃 2020. 11. 19. 05:38

라히쉬 , 라기스 성벽에 딸린 방 에 관한 설명 (국립공원 안내)

히즈키야 왕 시대의 성문 모습을 고고학 발굴을 기초로 그림으로 그려놓은 상상도.

 

지정학적 으로 유럽과 아시아의 사이에 위치한 이스라엘은 고대로 부터 전쟁과 전쟁으로 점철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 방문하게된 라기스 (라히쉬)지역은 고대 근동의 역사 안에서 성경에 기록된 전쟁터 인지라 

더욱 의미가 있는 국립 공원이 아닌가 합니다.

코로나 비대면 시대가 아니었다면 제대로된 국립공원의 면모를 갖추고 입장료도 받아가며 관광객을  받을때 이지만 

아쉽게도 아직은  때가 아닌듯 합니다.

여러번의 발굴을 거치며 라기스(라히쉬)의 변천사를 볼수 있도록 준비하고 국립공원으로 승격시켰지만 

코로나 팬데믹이 와서 당분간은 찾는 사람이  많지 않을테니 당분간은 예전처럼 무료 입장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아침 일찍 찾아본 라기스 국립공원에는 관리인 한명이 라디오를 틀어놓고 정원손질을 하고 있었는데 

요즈음에는 찾는이가 없다고 했습니다.

라기스의 위치는  성도 예루살렘으로 부터 남서쪽 으로 약 40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곳 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기 전 부터도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하여 고대문헌(이집트의 외교문서

아마르나 편지 - 기원전 14세기 아케나톤 왕의 통치시대에 작성된것)에도 등장하며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 

 ("여호수아는 온 이스라엘과 함께 라기스로 나가 진을 치고 그 곳을 공격 하였다 

   주님께서는 라기스를 이스라엘의 손에 넘겨주셨다 " 여호수아 10:31,32)

이후에도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는 도시 였다고 합니다.

유다 지파 에게 분배(여호수아 15:39)된 이곳은 르호보암(르하브암 )에 의해 요새화된 성 입니다.(역대하 10:5-10)

성경에는" 르하보암이 요새를 튼튼하게 만들고 지휘관을 배치한후 양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저장해 두었다"(역대하 11:11,12)"또 모든 성읍에 큰 방패와 창을 갖추어 놓고 그곳들을 매우 튼튼하게 만들었다"고 쓰여 있습니다.

이러한 성경의 말씀들이 고고학 발굴을 통해 그대로 보여지고 있습니다.

이중성벽을 쌓은 견고한 성과 그시기의 액체를 담던 용기등이 발견되어 놀라움을 더해 줍니다.

텔 라기스 (라틴어 , 히브리어로는 텔 라히쉬)라히쉬, 또는 아랍어로 텔 에드두와이어  (Tel ed-Duweir)로 알려진 

이 언덕 아래에는 모샤브(이스라엘의 협동농촌 ) 라히쉬가 옛 이름을 보존 하고 있습니다.

라히쉬 모샤브는 1955년에 설립되어 약 800여명이 모여 살고 있으며 주로 농사를 짓고 있는데 

특히  5백 헥타아르땅에 심은 포도 농사 (청 포도, 검은포도, 붉은 포도등)로 많은 수익을 올리는 것은 물론

해외로 수출도 하고 있습니다. 수출지역은 주로 영국 이라고 합니다.

현대 농촌 모샤브와  전쟁의 역사가 보이는 과거의 언덕이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라기스 골짜기는 위치적으로 유다산지로 오르는 중요한 통로 입니다.

라기스가 점령되면 예루살렘도 위험할 수가 있기 때문 입니다.

앗시리아의 산헤립이 라기스를 점령 했을때 유다임금 "히즈키야는 주님의 집과 왕궁의 창고에 있는 은을 모두 

내어 주었다. 주님의 집 문짝들과 문설주에 입혔던 금을 벗겨 아시리아 임금에게 내준 것도  그때이다."

(열왕기 하18:15,16) 성경은 이렇게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은 함락되지 않고 주님의 보호로 구원 됩니다.

기원전 701년의 일 입니다.

산헤립의 기록을 보면 그대 유다성읍 46개를 공략하고 작은 성읍과 마을은 불태워

20만명을 포로로 데려갔다고 합니다.

이때의 전투모습이 니느웨의 산헤립  궁에서 발견된 27미터의 부조에 자세히 표현되어 있습니다.

치열한 전투의 모습과 유다인들의 방어를 나타낸 부조인데 원본은 대영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박물관에는 사본이 전시되어 있는데 그 부조를 살펴보면 7개의 공성기로 라기스성을 함락 하려는 

앗시리아의 군대를 활과돌 그리고 불 방망이로 대처하는 유다인들의 모습이 있고 

포로로 끌려가는 유다인 들과 유다왕이  절을 하는 모습입니다.

성경의 내용을 입체적으로 볼수 있는 역사자료라 할 수 있겠습니다.

라기스는 바빌로니아 에 의해 함락되는데 그때가 기원전 587년 입니다.

바빌론 유배 이후에 귀환한 유다인들은 다시 라기스 주변 성읍에 정착하여 거주하기 시작 하였다 합니다.

 (느헤미야 11;30)

바빌로니아에 함락되던 당시의 사건을 알수 있는 21개의 도기편 (오스트라카OSTRACA )들로 구성된

라기스 편지가 발견되었는데 그중에 하나는 이런 내용 입니다.

"우리는 장군께서 보내시는 봉화를 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아세가(아제카)는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내용은 당시에 이미 아세가 (아제카 )는 함락 되었다는 이야기 입니다.

 이 두도시는 예레미아서에서 언급하고 있는 도시들 입니다.(예레미야서 34:7)

국립 공원으로 올라가는 입구 입니다. 

성문에서 내려 가는 길 입니다.

성문 입구의 모습입니다.

편지들이 발견된 방 입니다.라기스편지 라고 부릅니다.(도자기 파편들로 이루어진 편지들 )

라기스 요새는 유다 왕국에 속하는 영토 입니다.

역대 왕들의 이름과 재위기간을 의자 높이로 표현 했네요, 재미 있습니다.

이곳을 찾는 아이들에게 자연스럽게 역사 공부를 할수 있도록 배려한 발상 인듯 합니다.

이스라엘 유대인 종교학교 학생들은 물론이고  종교와 상관 없이 부모님과 함께 소풍을 나온 아이들도

역사 탐방을 할수 있는 곳 입니다.

예레미야서 34장 7절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식수의 근원지 입니다.  고고학 발굴의 성과 입니다. 

1932년 부터 1938년 까지 영국 원정대에 의해서  처음 발굴되기 시작하여 2017년 한국인 발굴단에 이르기 까지

많은 발굴의 역사도 거쳤습니다.

초기 발굴에서는 중동에서 가장 오래된 흙벽과 불탄 흔적 화살촉 등을 발굴해 내어

이곳이 성을 부순 큰 전투가 있었던 곳  이라는것 을 증명해 내었습니다.

성의 배수로의 잔해와 라기스의 편지도 이때 함께 발견 됩니다.

라기스의 편지는 유다의 불안한 정치와 바빌론의 침공 ,

악화되어 가는 사정들을 생생하게 알려주는 중요 문서 입니다. 

청동기 시대 후기의 장식들과 도기 그릇들 제구들 , 석고 유리그릇 ,상아제품 등이 발견되었다 합니다.

열왕기 하편 19장 35절에서 37절의 내용이 적혀 있네요, 산헤립의 말로를 알려 주는 대목 입니다.

"아시리아 임금은 그곳을 떠나 되돌아 가서 니네배(니느웨)에 머물렀다 "(열왕기 하 19:36

 1966년 에서 1968년 에는 이스라엘 고고학자 아하로니에 의해 외부 지탱벽 주거지와 태양신전 ,  

 수갱 ,유다궁전 요새가 추가로 발견 됩니다.

1973년 우시시킨 과 이갈 야딘 고고학자는 유다 궁전 요새와 청동기 시대의 기념 건물과 성문을 발굴 합니다.

그리고 언덕의 남서쪽 에서 성벽을 향해 쌓은 언덕을 발견 합니다.1만 5천톤의 흙과 돌을 쌓아 만든것 으로 공성퇴 

병거가 오를수 있도록 언덕위에 회칠한 흔적도 발견 합니다.

산헤립의 부조에 나오는 모습그대로 입니다.

인공으로 언덕을 쌓아 공성퇴를 사용해 공격 했다는 산헤립의 이야기가 입증 된것 입니다.

 2015년 에서 2017년 홍순화 목사님을 단장으로  출범한  한국 발굴단은 기원전 10세기에 사용하던 당시의 가옥과

 집안 에서 사용하던 토기와 화덕 , 짐승뼈, 올리브 씨앗, 창의 머리부분 , 성벽 등을 발견 합니다.

 이 발견을 통해 라기스는 성벽을 갖춘 계획된 일정한 구조를 가진 유다왕국의 계획도시 임이 증명 되었다 합니다. 

 2016년 5차 발굴을 통해서는 성문의 안쪽에서 돌로된 변기도 발견 되었다고 합니다.

기원전 4천년 부터 사람이 거주했던 오래된 역사의 도시 , 성경에 기록된 바빌론의  마지막 방어 도시, 

헤브론 산지와 지중해 사이에 있는 전략적 요새였던 라기스에 오늘은 그저 정적 만이 감돌고 있습니다.

코로나 비대면 시대가 아니면 이곳에 소풍오는 종교인 학교의 학생들을 많이 볼 수 있을터인데  오늘은

아무도 이곳을 찾지 않고 있습니다.

라기스 도시 전체를 전세 낸듯한 느낌 입니다.

일반적으로 다른 성지에 비해 많이 알려진 곳은 아니나 개인적 으로는 텔 아제카와 더불어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 

장소라 생각 됩니다. 역사의 흥망성쇠 , 전투의 치열함 , 과거 전쟁사 , 고대인들의 신관과 신앙 ,그리고 우리 각자의 

믿음을 돌이켜 볼수 있는 장소라는 생각이 듭니다.

구약 성경과  성서 고고학이 일치하는 떨림이 있는 성경의 역사 탐방지인  라기스는

오늘도 말없이 세월을 견디고 있었습니다.

7월의 태양이 점점 뜨거워 지고 있습니다. 이젠 또 다른 목적지로 떠나야 할 때 입니다.

 

방문기를 작성하면서 위키 백과와 두란노 성경사전 , 국민 일보 ,

2019년 장신대 학술세미나 이스라엘의 역사와 희망 ,국립공원 설명서 등을 참조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