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탈출

아코 항구 2 - 짧은일기

광야의 들꽃 2021. 7. 8. 01:19

 아코는 십자군 시대의 성채를 포함한 구시가지가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코로나 시대 이전에는  관광객으로 가득한 항구 도시였다.

 외국인 단체 관광객과 이스라엘 학생들의 수학 여행지로 각광을 받던 도시가

 코로나 시기를 지내며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서 찾아본 어느 날의 두 번째 방문기를 적어본다.

십자군 성채가 있는 관광지 입구로 들어서면 정원이 있다.

오래된 열대 식물들이 그늘을 만들어 쉴 수가 있는 공간이 조성된 곳이다.

화장실 가는 방향을 나타내는 표지판을 보니 중국인 관광객의 수가 상당한듯하다.

안내하는 설명서도 물론 중국어로 되어있었다. 

그동안에 얼마나 많은 중국 관광객을 맞이 했는지 설명서와  화장실 안내 표지판으로 

알 수가 있었다.  

관광 안내소로 들어가는 문이다. 극장에서 아코를 설명하는 짧은 안내 영상을 볼 수 있는데

중국어로 된 안내 영상도 있었다.

이곳 아코의 공식적인 안내 표지판은 4개국 어로 보인다.(히브리어, 아랍어, 영어, 중국어)

폐허로 덮였던 모래 언덕을 들어내니 과거의 요새가 그대로 드러난 곳이다.

언덕 위로 올라서면 바다가 보이는 도로가 나타나는데 이곳이 아코 감옥의 입구가 된다.

다리를 건너 안으로 들어가면 영국 통치시대의 감옥이다. 

오늘날에는 감옥의 건물이  영국에  저항한 시온주의자들의 지하조직 기념관과 박물관이 되었다.

죄수들이  감옥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만들어진 모형들이다.

감옥으로 들어서며 밖을 바라다보니 철창 문이다.

나도 감옥으로 들어온 것이다.

하루에 한 번씩 운동하는 시간에 그들은 어딜 보고 있었을까.

지붕으로 올라가 보니 멀리 하이파 항구까지 잘 보인다.

밖은 이슬람 사원이 있는데 이슬람교를 믿는 죄수들은 아잔(이슬람교의 기도 시간을 알리는  음악적 운율이 있는 기도 - 위키피디아 )을 들으며

기도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스라엘 건국 이후로 경찰서로 사용되다가  현재는  

이스라엘 지하 독립운동단체 감옥 전시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아코 감옥으로 알려져 있는 이곳은 1991년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거쳐

새로운 박물관으로 탄생하게 된다.

보수 이후에 처음 방문하게 되었으니 30년 만이다.

감옥이 있는 건물은 오토만 터키 시대의 건물이다.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는 부분과 광장의 부속건물들은 십자군 시대의 것이다.

땅속의 십자군 건물을 알지 못하고 터기 정부는 그 위에 건물을 지어 정부 부속건물로 사용하였다.

 유명한 바하이교의 창시자인 바하울라도 터어키 통치시대에 이곳에 잠시 갇혀 있었다.

 감옥에서 풀려난 바하울라는  아코 주변에서 가택 연금 상태로 머물다 세상을 떠나게 되어

 하이파와 함께 아코도 바하이 교의 성지이다.

십자군 성채에서 밖으로 통하는 문이다.

감옥이 있는 장소는  오늘날에는 십자군 성채에서 보면 가장 높은 층이나  건물은 18세기 것이다.

창살 너머로는 나무도 보이고 햇빛도 강렬하다.

수용소에 갇혀있는 정치범들에게도 내가 보는 모습들이 보였을까?

영국이 팔레스티나를 통치하던 시기에 많은 유대인 저항 조직들이 있었고 

그 조직들이 오늘날 이스라엘 방위군의 주춧돌이 되었다.

영국군에 저항하던 지하조직의 일원들이 수감되었고 이곳에서 교수형에 처해지기도 했다.

1947년 5월 4일에 유대인 저항 단체는 아코 감옥을 폭파하는 작전을 감행하여  

유대인 저항 단체 조직원 27명을 탈출시키는 데 성공한다.

이때의 혼란 속에서 아랍인 죄수들도 214명이 함께 탈출했다고 한다.

오래전 어린 시절에  감동으로 보았던 영화 " 영광의 탈출 "에서도 이 사건을 다루었던 기억이 났다.

이스라엘 건국의 이야기가 담겨있던 그 영화는 어린 나에게 왜 그렇게 감동이었을까!!

오늘 박물관을 돌아보며 다시금 그 영화를 떠 올렸다. 

주연배우 때문이었을까? 폴 뉴먼이 주인공 아리 역으로 나왔었다.

 

창살이 보이는 복도의 끝이 탈출로 이어지는 장소가 아니었나 해서 찍어본다.

출입 금지 팻말이 붙어 있는 걸 보니 위험한 장소처럼 보인다.

감옥 건물 지붕에서 찍은 사진은 갈멜산의 하이파가 아주 가깝게 보인다.

 

정치범들의 수용소였던 영국군의 감옥 건물은  죄수들이 머물렀던 방마다 

이스라엘 건국의 주인공들이 이루어놓은 업적을 이야기하는 새로운 장소로 탈 바꿈 되어 있었다.

이스라엘 건국역사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영국군으로 제1차 세계대전에도 참전했던 

제브 자보틴스키(ZeevJabotinsky 1880-1940  러시아계 유대인 , 시온주의자, 작가, 군인 -위키 피디아)가 수감 되었던 방은 창문도  있는 것을 보니 정치적 거물이라 특별 대우를 받은 듯하다.

자보틴스키라는 이름은 이스라엘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도시의 거리에서, 공원에서 그리고 각도시의 광장에서.

오늘날 이스라엘 우익 보수정당(리쿠드당  )의 뿌리가 되는 수정 시오니즘(민족주의 시온주의라고도 한다. 유대국가의 건설과 유대민족의 정체성을 강하게 주장한다.-나무 위키 )에 기반을 둔 헤루트당은

자보틴스키의 이념을 계승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위키피디아)

 

아코 감옥을 방문하며 자보틴스키 라는 인물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현장 학습으로 이곳을 방문하는 모든 아이들은 적어도 한 사람의 건국 영웅들의 이름은 기억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현장학습의 좋은 점은 바로 그 자리에서 배우고 느낄 수 있는 장점을 가진다. 

나는 우리나라의 어린이들도 현장 학습을 통해 나라의 독립을 위해 애쓰신 독립 운동가들과 

민족 교육자들의  이름을 기억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고대 항구 아코에는 이스라엘의 역사가 함께한다.

오늘날에는 항구의 기능을 상실했지만 십자군이 지배하던 

시절에는 유럽에서 성지 팔레스티나로 들어오는 

가장 큰 관문이라 할 수 있었다.

이슬람 제국의 땅으로 변화된 후 아코는 새롭게 건설된다.

18세기에 십자군의 성채 위에 요새를 건설하고

오토만 터키 시대의  정부 건물로 사용된다.

나중에는  무기창고와 정치범 수용소가 되었다.

영국이 통치를 시작한 1917년부터는 

본격적인 반 정부 팔레스타인 정치범 수용소로 변한다.

오늘날에는 이스라엘 건국 영웅들의 역사가 있는

새로운  교육 현장으로 변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