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탈출

진도에서

광야의 들꽃 2009. 10. 14. 23:13

 진도를 생각하면 진도 아리랑과 진돗개가 떠오릅니다.. 그런데 오늘의 일상 탈출

  에서는 또 새로운 진도를 발견합니다. 울 돌목과 한국판 모세의 기적이 바로 이곳에 있습니다.

  차창 밖으로 잠시 보이는 곳이 울돌 목 입니다. 이곳이 그 유명한 이순신 장군의

  명량대첩지 라고 합니다. "소리를 내어 우는 바다 길목 "이라는 순 우리말  울돌목.

   바로 명량해협입니다. 정유재란 때 이순신 장군이 13척의 배로 왜선 133척을

  무찌른 바로 그 유명한 역사의  현장입니다.

 

  오늘날 이곳에는 2005년 12월 15일 개통된 제2 진도 대교가 있습니다.

 

 울돌목의 폭은 294미터 정도이나 물살이 세고 소용돌이가 심해

 그 소리가 해협을 뒤흔들 정도라 합니다.

 그런 연유로 다리가 세워진 곳이지만 일찍이 이순신 장군 께서는 그 점을 이용하여

 해전에서 대승을 거두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이 진도 대교는 진도의 새로운 상징물입니다.

 성웅 이순신 장군님과 함께...... 

 

 

 우리의 다리 만드는 기술은 참으로 놀랍고 신기할 정도입니다. 어린 시절 남해 대교가

 처음으로 준공되었을 때 구경 좋아하는 나는 아버지를 따라나섰던 기억이 아직 있습니다.

 우리 손으로 우리가 직접 만든 다리, 경제 개발 도상국으로 발전하고 있던 우리나라의

 모습에 대한 글짓기 대회에도 출전했던 기억이 납니다.  생각해 보니 그 후로도 다리 구경을

 참 많이 다녔습니다. 어느섬에 새로운 다리가 생기면 꼭 보러 다닌것 같아요.

 그뿐 입니까? 세상 어느 곳이던 구경을 다니면 다리 사진 한두 개는 꼭 들어 있었지요.

 그러고 보니 진도 대교는 센프란시스코의 금문교를 연상케 합니다.

 지난 시절 배를 타고 다니던 길들이 이제는 다리를 통해 가게 되었으니 섬이라는 이름이

 무색합니다. 신비의 섬 진도가 바야흐로 진도 대교를 통해 그 베일이 벗겨지는 순간이라고

 해야 할까요, 베일이 벗겨진 그 섬의 시작은 이순신 장군과 함께 였습니다.

 

 진도 대교를 바로 건너니  이순신 장군이 호령하고 계십니다. 일찍이 이리 큰 충무공의

 동상은 처음입니다. 광화문에 계시는 장군님보다  더 크십니다. 그러나 세운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인지 아직 설명이 없네요. 관광지 조성 중인 듯 보입니다. 

 

 거북선 (임진왜란 당시 조선 수군의 돌격형 전함)을 이용하여 임진왜란  당시 왜적을

 물리치는데 혁혁한 공을 세우신 이순신 장군 , 그러나 모함을 받아 죽음의 문턱까지  이른 후

 백의종군 상태에 계시던 장군은 원균이 칠천량 해전에서 대패하게 되자 조정으로부터 

 다시 삼도 수군통제사로 재 기용됩니다.  그러나  전선은 고작 12척 거북선은 모두 손실되고  

 남아  있지 않은 상황입니다. 1597년 9월 16일 장군 께서는 새로 수리한 한 척의 배를

 포함한 13척의 배로 사기충천하여 대선단을 이끌고 수로를 통한 한양 재 침탈을 노리던

 왜군과의 죽음을 각오한 대 결전에서 울돌목의 거센 지류와 지형을 이용하여 적을 대파

 하는 사상 유례없는 대승을 거두게 됩니다. 이것이 전쟁 종결의 결정적 계기가 됩니다.

 이곳이 바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명량 대첩을 기념하는 녹진 승전 공원입니다.

 

 충무공의 얼을 기리고 전승을 기념하는 장소로 보입니다.

 울돌목 에는 거북배 유람선 여행도 할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습니다.

 승선 인원 174명인 이 울돌목 거북배는 길이 49미터 폭 10미터 무게 368톤으로 최고 속도 15노트로  

 하루 4차례 운항된다고 합니다. 녹진과 우수영 , 녹진과 벽파,를  왕복 운행합니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기억할 수 있는 좋은 관광 상품처럼 여겨집니다.

 

  멀리 우수영 거북 배 선착장이 보입니다.

  사실 이번 일상 탈출을 계획할 당시에는 이순신 장군의 한산 대첩을 기억하려 했습니다.

  시간이 여의치 않아 방향을 계획 없이 돌렸지만 뜻밖에도 명량대첩의 충무공을 만나게 되니

  결국  이순신 장군을 기억해야 하는 것은 이번 여름의 또 다른 필연이 아닌가 생각되어집니다.

  진도는 생각보다 크고 아름 다운 섬입니다. 호국 정신이 깃든 긴 역사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 님뿐 아니라 고려시대의 대몽 항쟁의 결의를 다짐한

  삼별초의 흔적까지 찾아 볼 수 있는 그런 곳입니다.

  시간이 넉넉할 때 다시 찾고 싶은 그런 장소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발견한 진도의 신비. 신비의 바닷길입니다. 호랑이가 나오는 마을 호동 (이름이  

  회동리인 이유입니다.)에서 호랑이를 피해  미처 달아나지 못하고 마을 사람들이 달아난 마을

  모동을 향해 기도를 드리던 할머니에게 기적 같이 열린 바닷길, 그것이 오늘날 한국판 

  모세의 기적으로 알려져 있는 신비의 바닷길입니다. 할머니가 바라보고 있는 방향은

  모동입니다. 아래 사진의 오른쪽 방향에 보이는 섬입니다.

 

 

할머니의 동상이 있는 곳에서부터 오른쪽 섬까지 매년 음력 이월 말에 조수 간만의 차로 해저의

사구 2.8킬로 미터 구간이 40여 미터의 폭으로 바닥을 드러 낸다고 합니다.

매년 2월 말에서 3월 초 고군면 회동리와 의신면 모도리 사이에서 조수간만의 차로  일어나는

현상을 처음 본 프랑스 대사님께서 신비한 현상으로 소개한 후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덕분에 진도는 재현된 홍해의 기적으로 세상에 소개가 되었답니다.

 

지금은 이렇게 물이 차 있는 곳이나 그때가 되면 가장 넓고 얇게 바다가 열려 무릎까지 오는

물길을 건너 회동에서 모동으로 걸어갈 수가 있다고 합니다.

친절한 안내자 선생님의 말씀으로는 한 달에도 두 번 조금에 따라 물의 양이 달라지므로

매월 첫 주나 보름쯤에 그런 현상을 조금씩 볼 수가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음력 이월 말 3월 초에는

가장 많이 얇게 열리기 때문에 더 쉽게 걸을 수 있다고 합니다. 

이미 세계적으로 알려져 버린 이곳을 찾기 위해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든다고 하는 이곳이

바로 신비의 바닷길입니다.. 이름은 들어 알았으나 때를 알지 못한 무지한 이 사람은 이번

일상 탈출에서는 모세의 기적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기도를 드리는 호동 마을의 할머니 , 선한 삶으로 사람들을 감복시킨 할머니가 하늘까지

 감동케 해서 바닷길이 열리게 한 전설 속의 주인공입니다. 

 

 이러한 재미있는 얘기들을 친절하게도 자상하게도 알려주신 무료 해설가 선생님,

 정말 감사드립니다. 애국애족 정신의 표상으로 진도의 역사를 설명해주시던 해설가

 선생님의 환한 미소가 생각납니다. 자기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은 언제 어디서도 빛이

 납니다. 그것이 바로 프로 정신입니다. 한낮의 더위속에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외국에서 온

 한국말도 서투른  조카 녀석 들에게 대한민국을, 한국을 , 역사를 이해시키려 하셨던 그분께

 이 자리를 빌려 큰 박수를  보냅니다.

 잠시 둘러본 진도는 많은 볼거리와 문화 예술의 향기가 듬뿍 묻어 나는 곳입니다.

 미술관과 국악원이 있어 우리의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가질 수도 있는  

 그곳으로 다음에는 더 길게 더 여유롭게 떠나 볼까 합니다.  

 이번 일상 탈출은  진돗개와  진도아리랑으로만 각인된 나의 머리에 충무공 이순신 장군,   

 모세의 기적을 연상시키는 <신비로운 바닷길 > 그리고 영화  "스캔들 조선 남녀 상열지사"의

 배경이 되었던  <운림산방>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것을 입력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역시 일상 탈출은 신나고 재미나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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