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뿌리를 찾아 서 2. - 시 어머니의 고향 에디르네 (Edirne)

광야의 들꽃 2010. 5. 29. 23:36

   돌아가신 저의 시 어머니께서 어린 시절을 보낸 지역은 에디르네  ( Edirne  )라고

   불리는 터어키의 북서부에 위치한 곳입니다.  발칸 반도의 동부에 위치한 곳으로

   터어키의 가장 서쪽에 위치한 곳입니다. 트라키아 반도로 일명 유럽 쪽 터어키에 속하는

   곳 입니다.  그리스 와는  7킬로 미터 , 불가리아 와는 20킬로 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곳 입니다. 그래서인지  시어머니께서는 항상 본인들은 유럽인임을 강조

   하셨읍니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20년도 더 지난  아주 오래전에 이곳을 지나

   그리스로 여행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이곳이 나의 삶과 관련이 있는곳이 될 줄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미 폐허가 되어 버린  이 유대교 회당의 규모는 번성기의   유대인 공동체의  크기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지금은 인구 14만 1570 명인 (2009년 - 위키백과 )  이곳에서 

 단 한 사람인 유대인 ( 슈퍼 마켓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을 만나 그를 통해 회당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1905년 에는 유대인의 인구가  약 일만이천 명 이었다 합니다. 

 

 

 

 지진이 가져다준 피해는 더욱 심각해서 이제는 접근 금지의 구역으로 변했지만 그 시절

 유대인 공동체의  크기를  가히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유대교 회당의 옆집에서  제 시어머니 께서는 어린 시절을 보내신 것입니다.

 넓은 뜰이 있는 회당의 옆집에 사시던  이탈리아에서 이주해온 그들은  불란서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인지  불란서 말을 곧 잘하셨습니다.

 

  Edirne (에디르네)가 자랑하는 Suleimye mosque ( 슐레이미에  사원)의 야경입니다.

  알고 보니   오토만  터어키 제국이 자랑하는  건축물입니다.

 

  1575 년에 완공된 이 이슬람 사원은  터어키에서 가장 높은  첨탑  (70.9 미터 )을 가진

  사원이라고 합니다.

  미마르 시난 (Mimar Sinan)이라는 대  건축가에 의해서 만들어졌는데 천장의

  둥근 돔 은  이스탄불의 아야 소피아 (  St. Sophia ) 성당 보다도  더 높다고 합니다.

 

        터어키 하면 빼놓을 수 없는 맛 좋은  후식 거리들이 있습니다.

                       바로  터어키의 기쁨(turkish delight )으로 잘 알려져 있는     

   로쿰(lokum: 전분과 설탕을 섞어 젤리처럼 만든 과자로 우리나라의 찹쌀떡과 비슷합니다.

   장미와 레몬 시럽을 넣어 맛을 내고  땅콩, 피스타 치오, 헤이즐넛  등을 가운데 넣어

   감칠맛을  내는  터어키의 전통 과자입니다.) 

   쿠리 비예(피스타 치오를 잘게 부수어서 만든 과자 -에디네르 특산품 )

   마르치판 (marzipan : 으깬 아몬드와 설탕 달걀흰자로  만든 말랑말랑 한 과자 ,

                                 젤리와는 다름. )등입니다.

  상점 주인은 오바마도 주문한 것이라며  그 사진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들도 한 보따리씩 종류별로 구입해서 가게를 나왔습니다.

 

  카라반 형식의 호텔입니다. 이름도 카라반 궁전 호텔(karavansaray)이라고 합니다.   

  뜰에서는 주로 결혼식을 하는 모양입니다. 아침 식사전  식당으로 가는 길에 한장 찍은 것 

  입니다.  일인당    아침식사 포함 30 유로 지불했는데  나쁘지 않은 선택입니다.

시장 구경도 나서  봅니다. 시 이모님께서 경영하셨던 타올상점을 찾아보려고

나선 길 입니다. 일반적인 상품을  진열하는 시장이지만  청결한 느낌이 듭니다.

 

 

 아직도 운영되고 있는 하맘 ( hamam : 터어키식  목욕탕 )과  길거리의 노점상들이  그냥

 정겨운 주변 풍경들입니다.

 

 새로 보수된 모스크(이슬람 사원 )에도 살짝 들어가 봅니다.  내부 구조는 모든 다른 사원들과

 다름이 없습니다.  신발을 벗고 들어 와서 메카를 향해 절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원형의 

 구조입니다.  기도자들을 위한  미스바하( misbaha :이슬람교도들이 기도할 때 사용하는

  도구. 99개의 구슬 혹은 33개의 구슬로 되어 있음. )가 한쪽에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터어키에서 오스만 특유의 건축 양식을 확립한 사람이 바로  미마르 시난 ( mimar sinan)입니다.

   미마르는 터어키 말로 건축가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웅장하고 아름다운 과거의 건축물들을 현대에 보수해 놓으면 그 아름다움은 훨씬

 뒤 떨어지는 것을 볼 수가 있는데 여기도 마찬가지인 듯 보입니다.

 

 색감이며 질감이며  모두가  제 눈에는 만족스럽지 못합니다.

 좀 가벼운 느낌이 들었습니다.

 

   에디네르 주의 수도로서  툰자강과 메르츠강 사이에 있는  에디네르 ( Edirne)는 125년

    로마 제국의 하드리아누스 황제에 의해 재건되고 번창하게 되었다 합니다.

    로마 속주 트라키아의 수도로  번창하게 된 것입니다.

    이름도 황제의 이름을 따서 아드리아노 폴리스 (hadriano polis )라 불렸다고 합니다. 

    에디네르 라는 이름도 아드리노 폴에서 온 것입니다.

    그리스에서는 여전 히  아드리아노 폴이라는 이름이 사용된다고 합니다.

    1365년에서 1475년 까지 92년간 오토만 터어키 제국의 수도로써   행정 , 산업  

    문화의 중심지로  번영을 누린 곳 이기도 합니다.

 

      내 시어머님의  고향은 생각보다  크고  많은  역사적 의미를 담은 곳이었습니다. 

 

  마침 오늘은   건강을 담당하는 사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정기 모임일인 모양입니다.

 악대까지 동원되어 국가를 연주하고  아타튜르크 (mustafa kemal  Ataturk : 터어키의 

 근대  국가의 아버지 ) 동상 앞에 꽃다발을 바치고 있습니다. 국가가 연주되자 길을 가던

 모든  사람들도   멈추어 섭니다. 애국심이 대단해 보입니다.

 

 트라키아 (Trakya ) 대학 도 있었습니다.  그리스 국경 쪽으로는 더욱 아름다운

 신도시 느낌입니다.   불가리아와 독일  그리스, 루마니아 , 슬로바키아의 영사관이

 있는 도시 이기도 합니다.

 

  근대에 와서 수차례 전쟁을  겪으면서 주인이 여러 번 바뀌었던 도시  에디네르는 

  한동안 은 러시아에 , 불가리아에 , 그리스에 , 하지만 다시 터어키 땅으로 항상 복귀가

  되었던 그런 곳입니다. 그런 연유 때문인지 이곳에서는 다국적 다 종교 문화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나의  시 어머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녀는 항상 도시 소녀였었고 나의  시 아버님은

    시골 작은마을 소년이었습니다

    이제 도시 소녀의 고향을 뒤로하고 우리는 시골 소년의 고향을 찾아 나섭니다.

 

    에디르네는 시어머님의 고향이 아니더라도 여러 날 머무르고 싶은 도시입니다.

    과거와  현재가 함께 공존하며   다문화와  다종교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곳

    이었습니다.  건축물에서 도시 사람들의 옷차림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마음에

   드는 곳 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