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뿌리 를 찾아서 1.- 시 어머님의 고향 에디르네 (Edirne )

광야의 들꽃 2010. 5. 28. 19:54

    창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것 은 재미가 있습니다.

    일단  창 밖에서 일어 나고 있는 일이니   나와는 직접적 으로는  관계가 없습니다

    하지만 보이는  사건을  통해 우리는  모든 것을 직접적 으로든

    간접적 으로든 경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언제건 문을 열고  창 바깥으로 나가면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사건의 중심으로 들어서게 됩니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창밖으로 보이는  장면 들은 이스탄불의 구 시가지 모습입니다.

   유대인이신  나의 시부모님들은 터어키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이스라엘로  이주해 오신  분 들입니다.

   유대인의 방랑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간다면   벌써 기원후 70년 예루살렘 성전 파괴

   이후로부터 시작해야 하지만  시작은  중세 스페인으로부터  하겠습니다.

   방랑하던 유대인들이 제법 안정된 삶을 추구하고 있던 스페인에서 15세기에 유대인

   대 추방이 일어납니다.   군주가 강력해지면 역사적으로 항상 반복되는 사건입니다.

   스페인에서 축출당한 유대인들은 대부분 동부 유럽으로 이동하게 됩니다.

 

  이탈리아의 트라니라는 곳에 정착하게 된 이들의 조상들이  각자가 살길을 찾아 자신들의

  보금자리를 찾아 떠납니다. 우리네 성씨로 얘기해 본다면 아마도 본관에  속하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미트라니 ( 트라니에서 온 사람들 ) 성씨를 가진 사람들이 불가리아로 ,    

  중남미로 ,  그리스로 , 터어키로   이동하여 살다가  

  이곳마저도 안전하지 못하게 되자 거룩한 땅 이스라엘로 이주하게 됩니다.

  사진은 제 시어머님께서 어린 시절을 보내신 에디르네, 이데르네,  (Edirne) 거리  풍경 입니다.

 

  거리의 노점 상들이  내어놓은 싱싱한 마늘과 채소들은 

나의 어린 시절 우리나라의 시골 마을 풍경을 기억하게 합니다. 김치라도 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중앙통은 곧 무너져 내릴 것 같은 목조 건물들과 조금 보수가 된듯한 콘크리트 건물로

 이루어졌는데   동서양이 함께 어우러진듯한  묘한 느낌입니다.

 

 일본적인 냄새도 나고 한국적인 느낌도  있는 곳입니다.

 

 진열장 에는 각종 피클 (pickle : 소금 , 식초 등으로 절인 채소 ) 이 그 모습을  뽐내고

 있었는데 바나나 피클은 처음 봅니다.

 

이 동네 사람들은 꽃도 수레에 담아서 이곳저곳으로 판매하는 모양입니다.

무엇보다도 급히 서둘러서 거리를 걷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것이 신기합니다.

사람들은 거리를  배회는 아니지만  그냥 지나다닙니다.

 

  카라반 사레이 (karavan saray)라는 이름의 우리가 유숙한 호텔입니다.

  감옥을 개조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은  카라반 형태의 궁전입니다.

  오토만 터어키 제국의 냄새가 물씬 풍깁니다. 낡고 오래되었지만 욕실은  현대식으로 

  개조되어 있었습니다.   

  온수를 기다리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린 것만 제외하면 최상의 선택입니다.

  . 

   

아래층 뜰은 연회 때 사용되는 장 소 인듯 합니다.

벌써부터 이 도시가 좋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부부만  이곳을 찾았 다면 아마도

    이곳에서  여러 날  머무르게 될 가능성을 가진 곳입니다.

 

  거리로 나서 봅 니다.

  이 동네 집들은 아래는 콘크리트로 위는 목조 건물로 지어져  있습니다.

 

 반 지하 형식입니다. 시어머니께서 어린 시절을 보내신 집을 찾아 나선 길입니다.

 

   시부모님 께서  살아 계시던 당시  본인들의  고향을 찾아보시고

감회가  깊다고 하셔서

  온 가족이  함께 다시 한번 찾아가기로 계획했으나 시부모님  생전에

기회를 얻지 못하고 오늘에 이른 것입니다.  

 

 이제는 두분 모두 하늘나라로 가셨고  4남매의 둘째 이셨던 제 시어머님의  남동생 한 분도 

 세상을 떠나시게 되어 돌아가신 두분의 자녀들이 뿌리를 찾아나선 것입니다.

 

 

 두 분  모두 슬하에  남매를 두셨는데 비디오 촬영을 하는 분이  남편의  외사촌입니다.

 까만 옷의 여인이  외사촌 여동생이지요. 마침  유대인의 집을 발견했다며 열심히

 촬영 중입니다. 계단이 일곱개인 집은  십중팔구는 유대인의 집입니다.

 천지 창조 7일을 상징하는 일곱 촛대인 메노라 , 구약성서에서  일곱이라는 숫자는 완벽을

 나타 냅니다.  일곱 계단은  유대인 들에게 깊은 의미가 됩니다. 

 

  부모님을 생각하게 하는 아름다운 오월의 어느날  저는 이들의  

뿌리 찾기 여행에 동행 했습니다.  창밖의 세상으로 나선 것입니다.

 

 수퍼 마켓을 운영하며 아직도 이곳  에디르네에 거주하고 있는 유일한 유대인을 찾아 

 유대 회당의  위치를 묻고 그곳을 향해 걷고 있습니다. 다리가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우리의 안내자가 되어 주었습니다. 물론 유대인 이어서 도움을 주는것 이기도

 하지만  터어키 사람들의 특징은 길을  묻는 사람들을  절대로 그냥  무심히 넘기지 않는 

 친절한 사람들입니다. 본인이 할수 없을때에는 다른 이를 시켜서라도 꼭 그일을  완수하는

 사람들 입니다. 어떤 때는 하던 일도  접어두고  친절을  베풀기도 합니다. 

 제가 만난 터어키 인들은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유대교 회당 뒤쪽의 건물입니다.

   이곳의 옆집이 시어머님께서 어린 시절을 보낸 곳입니다. 집 안쪽으로 커다란 뜰이

   있었다는 시어머님의   말씀에 따라 외사촌들은 담장으로 올라가고  

   야단법석입니다. 

   그것도 모자라  삼촌께 국제 전화를 걸어  주소를 다시 확인하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 부모님이 사셨던 집을 발견한 기쁨은 감회가 새롭습니다.

    그것도 본인들이 원해서가 아니고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떠나야 했을 때의 느낌은     

더더욱 만감이  교차했을 것입니다. 제 마음이 이러할진대 당사자들은 더 하겠지요.

 

 조금 변화가 있었겠지만 바로 이 집이 나의 시어머님이 어린 시절을 보낸 장소입니다.

 

  회당  건너편 집도 유대인들이 살았던  집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그 옆집도  유대인들의 흔적이 보이는 집입니다.

 그들은  모두 이곳을 떠나고 없지만 그 흔적들은 아직 여기저기에 남아있는 것입니다.

 

 

        세상 어디를 다녀보아도 사람사는 곳은  모두가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들의 종교가 어떤 것이든 피부가 어떤 색이던 사람을 귀하게 생각하는 마음만

        있다면  비록  언어가 통하지 않더라도 

언제건 어디서건  친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것이 바로 사람 사는 세상 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만난  이 이슬람 여인처럼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