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땅 , 성경의 땅

베이트 구부린 (Beit Guvrin)텔 마레샤(Tel Maresha)

광야의 들꽃 2020. 12. 18. 00:54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으로부터 남서쪽 방향으로  약 6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한 국립공원이 있습니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2014년에 등재된 텔 마레샤 베이트 구부린 동굴입니다.

이 국립공원은 쉐펠라 (유대 저지대, 낮은 언덕으로 이루어진 평지 , 보통 해발 250미터 에서 350미터 )

지역에 위치하고 있으며 마레사 (기원전 8세기에서 1세기)와

베이트 구부린 (기원후 1세기에서 10세기 )은 

다양한 문명과 접촉하며 발전되어온  장소입니다.

성경에는 여호수아서에 유다 지파에 속한 땅의 이름에 등장합니다.(여호수아 15:44)

르호보암(르하브암 )이 요새로 만든 곳 도 이곳입니다.(역대하 11:8)

기원전  9세기 초에는 에티오피아(구스) 사람 세라(제라 )가 유다를 공격 하여

아사 왕이 마레사의 츠파타 (스바다 ) 골짜기에서 전열을 갖추고

전투에 참가한 장소입니다.  (역대하 14:8-11)

쥐엄 나무 사진 입니다. 성경의 탕자의 비유에 나오는 돼지에게 주는 열매,

새 번역 성경에는 향업나무로 번역 되었습니다.히브리어로는 하루부 라고 합니다.

제 1성전이 파괴된 이후 마레사와 남부 유다 온 지역에  에두미아 인들이 정착합니다.

그 후 후기 페르시아 시대에 시돈인 들이 마레사에 정착하였다는 기록을

제논의 문서(기원전 3세기, 259.B.C) 를 통해 발견하게 됩니다.

또한 고립된 이집트인들과 소수의 유대인들도 그곳에 살게 되면서 그리이스화 된 도시에는 

특별한 사회구조가 만들어지게  되는데 중요한 경제적 중심지가 된 마레사와 베이트구부린은 

도시가  형성되고  많은 동굴들이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텔 마레사의 동굴들은 주거지와 피난처, 그리고 비둘기 양식장인 콜롬바리움 , 올리브 기름틀 ,

그리고 목욕탕과 무덤 등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오늘 소개하는 사진들은   

시돈인들의 무덤과 종 동굴에 관한 것입니다.  

기원전  3-2세기의 마레사인들은 벽감에  매장하는 관습이 있었는데 본래의 벽화가 보존되어 있는 동굴에는

마레사의 시돈인 공동체를 이끌던 세스 마이오스의 아들 아폴로 파네스가 언급된 비문이  있습니다.

비문과 그림들은 그 시대의 예술, 신화, 그리고 동물학적 지식이 어떠했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매장된 자들의 인류학적 분류(에돔인, 시돈인 혹은 그리스인), 가족의 연대, 매장 관습 등도 알려줍니다.

이 그림들은  1993년에  원본 그림에  남아있는 스케치에 따라서 복원된 것입니다.

기원후 40년 마레사 지역은 파르티안 인들에게 점령되었다가  68년 로마의 베스파니아누스에게 점령되어 

쉐펠라의 행정 중심이 베이트 구부린으로 옮겨가게 되었다고 역사가 요세푸스는 이야기합니다.

제2성전이 파괴된 이후에  베이트구부린은 바르 코크바 전쟁 때( A.D. 132-135년)까지 계속해서

유대인의 정착지로서 존재하게 됩니다. 지하도시는 유대 항쟁 중 반란군들의 좋은 은신처가 됩니다.

기원후  200년에 셉티무스 세베루스 황제가 베이트구부린의 이름을 엘류쎄로폴리스(Eleutheropolis),

즉 '자유의 도시'로 바꿔 부르게 됩니다.

아랍어로는 베이트 지브린 (Beit Jibrin)이라 칭하는 이곳은 유대문헌 에서는

"동굴에 거하는 자들의 도시"로 알려져 있기도 합니다.

그리이스 로마시대에 해안에서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중요한  통로였던 곳으로 지금도 당시의 

로마식 도로를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곳 이기도 합니다.

3500명 수용 가능한  원형극장과 공공건물들이 이 도시의 자랑거리가 되었습니다.

로마 시대와 비잔틴 시대의 거대한  묘지와 건축물들이 발견되었고

특히 쉐펠라지역의 삼거리 (키리야트 갓, 벧 세메스, 벧구부린 키브츠가 만나는 곳 ) 에서는 

로마시대의 여관들이 발굴 되었는데 그곳에 쓰인 희랍어 비문 입니다.

"플라비우스 퀸티아누스 시대에  기초를 놓아 아름답고 화려한 여관을 건축 하였다 "

 

비잔틴 시대 동안에  베이트 구부린에는 많은 교회들이 생겨나 그리스도교의 주요 중심지로 변화합니다.

대부분의 종 동굴은 초기 무슬림 시대에 만들어지는데  십자군 시대에는 

베이트 구부린이 작은 요새화 된 도시가 됩니다.

오늘날 남아 있는 교회의 유적은 십자군 시대의 것으로  비잔틴 시대의 교회의 유적 위에

새롭게 재 건축된  성 안나 교회입니다.

지난겨울  폭우로 한쪽이  무너져  입장이 금지되었던  종 동굴 ( BELL CAVE)을 찾아봅니다.

종 동굴은 종 모양의 석회암 동굴이 800여 개에 이르며, 대부분의 동굴은 12~15m 높이로 이루어져 있고, 

가장 큰 동굴은 높이가 25m에 이른다  합니다. 

 벽들 곳곳에 채색이 되어 있으며, 대개 40~50개의 동굴들이 통로를 통해 서로 연결되어  있어 

 웅장 하면서도 신비스러운 느낌을 갖게 하는 곳입니다.

이 동굴들은  베이트구부린 경계지점에 위치 하고 있는데 비잔틴 시대와 초기 이슬람 시대의 것으로 추정 합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이 동굴들이 물 저장소, 가게, 주거지, 그리고 대피소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하였는데  오늘날에는 해안 평야와  베이트구부린에 있는 도시들의

건축자재를 공급하던 채석장으로 판명되었다 합니다. 

 10세기의 아랍 역사가 엘-무쿠아다시(El-Muquadasi)는  베이트구부린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썼다고 합니다.

"이곳은 부와 풍요의 땅이다. 이곳에는 많은 대리석 채석장들이 있다. "

채석은 좁은 입구를 통해서 시작되어 점차 넓은 구덩이가 생기게 되는데 그 이유는 

구덩이가 무너지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석회석이 말라버리는 것을 막기 위해,

채석공들이 날씨의 해를 입지 않도록 하기 위해, 그리고 분명한 윤곽선을 유지한 채로 공급하기 위하여.

즉 채석에 있어서 안전과 용이성에 이롭기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대리석 블록들은 로프를 통하여 동굴에서  올려지고 

채석은 주로 주후 7세기에서 10세기 사이에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이 종 동굴들에서는  영화 촬영도  있었습니다.

1973년판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와 1988년 람보 3탄입니다.

기원전 2- 3세기경으로 추정되는 동굴에서  22개의 올리브기름 틀과

수 백개의 기름 항아리 들을 발견 했다고 합니다 .

올리브 생산 공장 입니다.

그들 중의 대다수는 하나의 분쇄기와 분쇄기에서 나온 기름을 빼내는 압착기

(두 세개의 지렛대와 무거운  돌로된 추를 달아서 기름을 짜는 것)로 나눌 수가 있습니다.

 올리브 기름을 생산하는 것은 고대 세펠라 지역의 중요한 경제원이었습니다.

올리브 숲이 이 주변에 많은 부분을 차지했는데 올리브는 가을에 추수하고  

다음 두 세 달 동안 최고의 결과를 얻기 위해 기름을 생산 하는데 노력한 것으로 보입니다.

올리브를  착유 틀에 넣고 분쇄한 후 세 단계를 거쳐 여러 날에 걸쳐 기름을 짜게 됩니다.

올리브기름은 많은 필요를  채워 주었는데 등불을 밝히고 , 식용으로, 약으로 , 제의용으로,

반면에 올리브 나무(gefet)는 주로 연료로  사용되었다 합니다.

학자들은 적어도 이곳에서 1년에 270톤 가량의 올리브 기름이 생산 되었을것 으로 추정 합니다.

식용 올리브 절임은 이곳 지중해 문화권 에서는 우리나라의 김치?또는 짱아찌? 같은 것 입니다.

식사때 입맛을 위해 꼭 필요한 음식 입니다.

 지하도시 텔 마레샤와 벧 구부린은  모두가 즐길수있는 볼거리가 많은 특별한 국립공원 입니다. 

 아이들과 함께 방문해서 역사탐방과  지하세계를 탐험하는  재미를 느낄수있는 흥미로운 곳 입니다. 

참고  : 1.국립공원 입장료는 어른 27nis 어린이 14nis 입니다.             

          2.코로나 비대면 시기에 예약은 필수 입니다. 

          3.동굴속은 시원하나 바깥쪽은 그늘이 없어 여름엔 물과 모자 필수 입니다.

방문기 참고 자료: 위키피디아,  Tourist Israel, 바이블 워크닷컴 ( Bible Walks.com),국립공원 설명서.

                       돌멩이를 먹고 사는 사람들1권 (최창모, 건국대 출판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