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땅 , 성경의 땅

니잔나

광야의 들꽃 2021. 4. 16. 09:42

삶에서의 길은 매우 중요하다.

어떤 길을 택하는지에 따라 우리의 인생의 방향이 달라지는 것이므로.

학창 시절에 교과서에 나왔던 시가 있었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는 길"중에 나오는 마지막 구절.

오랜 세월이 흐른 다음 

나는 한숨지으며 얘기하겠지요.

"두 갈래 길이 숲 속으로  나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덜 밟은 길을 택했고,

그것이 내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라고.

선택의 중요성에 관한 시,

기회를 포기했던 일에 대한 소박한 회한에 관한 시였다고 배운 것 같다.

여기 그런 옛 도시가 있다.

길 목에 있어서 번창하다   길이 사라지며 소멸해 버린 도시. 

길과 함께 흥망성쇠 한 도시 니잔나.

오늘의 탐방 장소는 네게브 사막의 니잔나이다.

기원전 3세기 나바티아인(아라비아 반도 에서 이주해온 아랍 민족으로 추정된다 ) 들의 주요

통상로(향료 길 )의 하나로 교역소와 무역소의 역할을 하던 곳.

대상들이 통과하는 장소로 휴식처와 방어요새로 사용된 곳이다.

에일랏(EILAT)에서 가자(GAZA)로 가는 길의 중요한 위치에 니잔나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2세기 초엽 하드리아누스 황제 시대에 통상로가 에일랏(EILAT)에서

다마스쿠스(DAMASCUS)로 변경되어 도시가 급격히 쇠퇴하게 된다.

비잔틴 시대에  교역로 길이 에일랏(EILAT)에서 가자(GAZA)로  다시 열리면서

도시는  번성기를 맞는다.

이집트 시나이( 산타 카타리나 수도원 ) 산으로 성지순례를 떠나는  사람들의 휴식소가 된 것이다.

이때에 니잔나는 최대의  전성기를  누리며 교회들이 건축된다.

오늘날까지 3개의 커다란 교회가 발견되었다. 그중 하나인 성모 마리아 교회에서는

중요한 파피루스를 발견하게 되는데 그 수가  190여 개가 된다고 한다.

오토만 터어키  통치 시대에 건설된 기차역. 아직 남아있는   물탱크가 보인다.

비잔틴 시대의 교회건물 위에 세워진 독일 터어키식 병원 (1906-1917),

전쟁으로 부서진 채 그 자리에 있다.

발견된 파피루스를 통해 당시의  도시규모와  생활상을 더욱 자세하게 알 수 있게 되었는데 

1500명의 거주자와 116개의 집이 있었다 한다.

비잔틴 시대가 지나고 이슬람 통치 시대에 작은 마을로 전락한 도시는  

8세기 이후로는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다.

텔 니잔나(니산나, nizana) 두 개의 교회가 언덕 위에 있다.

성 세르게우스와  성 바쿠스 라는 이름이 돌에 새겨진 교회와   성모 마리아 교회이다.

1930년대에  고고학 발굴을 통해 발견된 파피루스에  Nessana 라는 이름이 나오기 전 까지는 잊힌 도시.

니잔나 파피루스는 교회와 가족 ,군사 기록을 상세히 적어 놓았다 한다.

 텔 니잔나 언덕  아래에 위치한  비잔틴 시대  교회의  기둥들이  보인다.

 수도원으로 추정되는 부속건물도 이곳에서 발견되었다고  학자들은 말하고 있다.

이집트와의 국경 지대에 있으니 전쟁을 피할 수는 없는 법.

독립전쟁 (1948년 12월 26-27일 ) 당시 이집트의 침입이 시작된 곳 이기도하다.

1차 세계대전 당시의 독일 터어키식 오래된 건물이 아직도 부서진 채로 남아있다.

전쟁과 평화의 역사가 함께 공존하는 현장을 포스팅하는 오늘은 이스라엘의 독립기념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