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땅 , 성경의 땅

고대항구 도르 산책길 2 - 짧은일기

광야의 들꽃 2021. 5. 8. 11:01

고대 페니키아 인들의 항구 도시인  도르는  여호수아에 의해 정복(여호수아 12:23)되어 

므나세 지파에게 속한 땅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정복하게 된 시점은 역사 고고학적으로  다윗왕 시대부터 이다.

그의 아들 솔로몬 왕은 전국을 12개의 행정구역으로 나누어 장관을 임명했는데

네 번째 행정 구역의 수도가   도르이다. (열왕기 상 4:11)

솔로몬은 아비나답의 아들인 사위로 하여금 도르 지역을 관리시킨다.

기원전 8세기 앗 수리아에 점령되었을 때는 욥바에서 갈멜산에 이르기까지의 해변 지대를 통치하는 

총독부가 도르에 있었다고 한다.

그리스 통치시기에는 견고한 성곽도시로 알려져 있는 도르는 

기원전 63년 로마의 폼페이우스에게 점령된 후 로마의 동전 주조소로 사용되었다 한다.

고고학자들의 상상 복원도를 살펴보면  언덕 아래에는 조선소의 기능을 하던 곳으로 보인다. 

지중해의 해변길에 위치한 항구도시인 도르는 역사가 바뀔 때마다 유용하게 쓰인 장소로 여겨진다.

고고학 발굴을 통해  기원후 2,3세기의 로마식 극장도 발견되었다.

두 개의 커다란 신전이 있던 장소이다.

고고학자들에 의하면 절벽 위에 우뚝 솟은 신전들은 기원후  2세기경의 건축물이라 한다.

바다를  향해 서있는   웅장한  신전 건축물들은  누구에게 헌정된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고.

고고학자들의 상상 복원도를 살펴보니  크기가 엄청나다.

이 신전 터는 나중에 교회로 바뀌게 된다.

세월이 흐르면서 고대 항구 도르는 탄투라( Tantura)라 불리는 아랍마을이 된다.

이스라엘  전쟁의 아픈 역사를 알 수 있는 곳이다.

새로운 나라의 건립을 위해 자기 땅에서 유배되는 사람들이 생기게 되었다.

1948년 이스라엘이 독립하면서 이 마을의 아랍 사람들은 자기 고향을 떠나야만 했다.

지중해 주변의 중심부에 존재한 아랍마을은 이스라엘이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는데 

몹시 불편한 위치에 놓여 있었던 것이다.

아랍인들이 떠난 곳에 폴란드와 미국에서 이주해온 유대인들이

키부츠(이스라엘의 집단 농촌 공동체 )낙숄림을 건설했다.

 키부츠 낙숄림은  아보카도, 목화 , 바나나 농작물을 생산하고  양어장과 휴양지 숙박업을 운영한다.

그리고 관개용수 점적 법에사용하는 플라스틱 제품들을 생산하는 공장을 운영한다.

십자군 시대의 무너져가는 건물을 쉼터 삼은 아랍인 어부에게 물으니

요즈음은 고기잡이도 힘들다고 한숨을 내쉰다. 

그는 주변의 아랍마을에 살면서 고기잡이 배를 이곳에 두고 있었다.

국립공원이 개발되면서 국립공원 내에서는 고기잡이가 불가하다는 방침이 내려왔다고.

근처의 아랍 마을에 살고 있는 어부들이 이곳으로 이동하여 고기를 잡는데 

점점 상황이 나빠지고 있는 것이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평화롭지만 삶의 현장은 쉽지가 않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멀리 보이는 해변은 키부츠 낙숄림의 해변이다. 

 

언덕 위에는 아직 봄꽃이 남아 있다. 

봄꽃들 사이로  붉은빛의 양귀비가  얼굴을 내밀었다.

 

새롭게 단장한 산책로는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을 배려했다.

지중해 고대 항구 도시 산책로 중에서  가장 맑고 깨끗한 바다를 볼 수 있는 장소가 도르 산책길이다.

평화로운 낙숄림 해변에서 윈드 서핑을 즐기는 사람이 보인다.

봄의 들꽃들은 나태주 시인의 풀꽃 3을 기억나게 한다.

"기죽지 말고 살아봐

  꽃 피워봐

  참 좋아"

 

 

 

 

 

 바다를 따라 걷다 보니 낮은 언덕이 나타난다.

 그 언덕 봄 꽃들 사이로 빨간 양귀비 꽃이 피어있다.

 언덕 위에 피어난 새빨간 양귀비꽃을 오늘 어버이날 부모님 가슴에  달아 드리고 싶다.

 붉은색 양귀비는 위로와 위안이라는 꽃말을 가졌다 한다.

 부모님의 사랑으로 위로가 되었고 부모님이 계셔서 위안이 되는 오늘.

 부모님께 이 사진을 바치고 싶다.  

고대 페니키아 시대의 도르항은  자색 염료를 위한 바다 달팽이 양식장으로 사용된 흔적이 있다.

바다 달팽이 모양의 구조물이 장소를 말해준다.

특별한 색인 자색 염료는  바다 달팽이(뿔소라 , 뿔고둥 )를 통해 얻어진다.

성경에는 대 사제의 예복에 관한 내용이 언급되는데 에폿에 관한 설명에 보면

자색 염료에 관한 내용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탈출기 39:1절에서 5절 )

자색 염료는 뿔 조개껍질을 제거해서 추출물을 소금과 혼합한 후에 만들어진다고 한다.

3일간 공기와 햇빛에 노출시킨 후에 큰 솥에 넣어 뚜껑을 덮고

바닷물과 함께 며칠 동안 서서히 끓여서 만들어 낸다.

페니키아 인들의 도시로 유명한 곳이 성경 속의 두로와 시돈이다.

자색 염료 공장을 통해서  도르항구도 지중해의 해상을 담당하던

페니키아 인의 도시임을 확인할 수가 있다.

실제로 시돈 왕의 무덤에서 발굴된 비문을 보면 페르시아 시대의 도르 지역은 

시돈인 들에 의해 통치되었다고 쓰여있다 한다.

바람 불어 좋은 날에  푸른빛 지중해  산책길을  부모님과 함께  할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힘들다 하시면 벤치에 앉아 바다도 보고 덥다 하시면 그늘에 앉아 쉬기도 하면서.

"어버이 살아실 제 섬길 일란 다 하여라

지나간 후면  애달프다  어이하리

평생에 고쳐 못할 일이 이 뿐인가  하노라"

송강 정철 선생의 시조 한 수가 오늘 나의 마음이다.

화려한 선진 문명으로 해안  지대를  지배해온 페니키아 인들은 도르항을 통해 이스라엘에

많은 물자와 기술을 공급해 주었다 한다.

고대 항구 도르는 헤롯 대왕이 가이 사리야에  항구를 건설한 이후로 쇠퇴하기 시작한다.

요세프스플라비우스의 유대 고대사에서 정복하기 어려운 요새로 나타난 도르는

매우 견고한 성곽도시였음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기독교 역사 속의 도르 지역은 비잔틴 시대 후기에는 주교가 상주하고 있었고

십자군 시대까지 중요한 역할을 하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탄투라 마을의 이슬람 성지  마캄  셰이크 알 마즈라미 (Maqam sheikh al- Majrami 보통 현자의 무덤 ) 사진.

낙숄림 휴양지 안에 위치하고 있어서 철조망 울타리를 통해 찍은 사진이다.

철조망 사진을 선으로 변화시키니 특별한 느낌이 난다.

지중해 해안의 고대 항구 도시 중에
가장 아름다운 산책길을 가진 도르 항구.
사진 크기 때문에 올릴 수 없던 사진들을
다시 정리해본다.
오늘 어버이날에 부모님께 보여드리고 싶다.

푸른 바다의 동영상도 함께

가까운 날에 인사드릴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간절함을 담아.

 2021년 5월 8일 어버이 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