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땅 , 성경의 땅

광야의 사람들 - 꿈란 공동체

광야의 들꽃 2022. 4. 9. 05:02

유대 광야에는 빛의 아들들이라는 특별한 공동체가 있었다.  

유대인 남자들만 모여 살았던 이 특별한 공동체는 자신들을 빛의 자녀 , 정의의 자녀들 , 경건한 사람들 , 

의로운 사람들 , 영으로 가난한 사람들 , 이라 칭했다.

세상을 버리고 광야로 나와 마지막 시대를 기다리며  예루살렘 성전의 제사 대신

기도와 거룩한 생활로 성전의 제사를 대신하는 특별한 공동체였다.

1947년 베두인 목자들에 의해 발견된 사해 두루마리 사본을 통해  꿈란 공동체의 존재 사실을 알게 되었다.

공동체의 사람들은 낮에는 일을 했고 밤이 되면 조용한 가운데 성경을 필사했다고 했다.

하루 두 끼의 공동체 식사와 일을 하고 몸을 정결케 하며  세상의 종말과 메시아의 도래를 

기대하며 마지막 시대에는 빛의 아들들이 승리하게 될 것이라 믿는 새로운 계약 공동체였다.

베두인 목자들이 발견한 동굴에는 항아리 10개가  있었는데 그중의 8개는 비어 있었다고 한다.

하나는 흙으로 가득 차 있었고 다른 하나의 항아리에 3개의 두루마리 사본이 있었다고 했다.

이 세 개의 두루마리는  나중에 성경의 이사야서 전권 , 공동체의 규율서, 하박국 주석이라는 것이  밝혀지게 된다.

며칠 후에 다시 동굴로 들어간 목자들은 이사야서의 두 번째 사본 , 감사 찬송 사본 ,

그리고 창세기 외경 사본을 더 발견하게 되었다.

골동품 상인을 통해 이들이 판매한  4개의 사본들을 시리아 정교 대주교는 당시 요르단 24파운드 (미화 110불 )를

지불하고 사들였다.

이스라엘에 독립전쟁이 일어나고 불안한 시기에 대주교는 가지고 있던 사본을 미국에 팔려고 

1954 년  월 스트리트 저널에 광고를 내게 되었다.

히브리 대학교의 수 케닉 교수는 나머지 다른 3개의 사본을 구입했었는데 

광고를 본 그의 아들 이갈 야딘이 25만 불에 사본을 사서 오늘날 이스라엘 박물관에는 

그 사본들을 전시할 수 있게 되었다 한다.

사본이 발견되던 당시 이 유대 광야 지역은 요르단에 속해 있어서

처음 8년간의 발굴은 요르단의 집행하에 이루어졌다.

1947년 동굴 발견 이후 1951년부터 1956년까지 총 11개의 동굴에서 900편에 가까운 다양한 문헌들이

발견되었다 한다. (동굴 탐사는 도미니크 소속 신부인 롤랑 드보 를 중심으로 예루살렘 성서 및 고고학 연구소가

담당했다.  )

첫 번째 동굴 주변으로 25개의 동굴을 탐사한 결과 구리로 만든 두루마리가 발견된 세 번째 동굴을 포함한 결과이다.

요르단 박물관으로 옮겨졌던 사본은 오늘날까지 요르단이 보관하고 있으며 

이스라엘 박물관에는 성서 사해사본 전당에 이스라엘 쪽에서 입수한 문서들이 보관되어 있다.

햇빛 좋은 3월의 어느 날 꿈란 국립공원을 찾으니  발견 당시의 놀라운 사진과

작업의 경과를 알리는 내용의 사진들이 입구에 전시되어 있었다.

코로나 시대를   공원 가꾸기와 보수에 힘쓴 바람직한 태도가 보여서 좋았다.

그리고 현지 관광객들과 성지 탐방객들을 위한 새로운 트레일이 생겼다.

11번째 동굴로부터 1번 동굴을 거쳐 꿈란 공동체  유적지까지의 광야 탐방길이다.

가족들과 함께 어린이도 갈 수 있는 1.6킬로 미터의 거리를 천천히 걸으며 사본이 발견된 동굴들을 

가까이서 관찰할 수도 있고 광야의 꽃들도 볼 수 있는  탐방길이다.

아침 일찍이나 해 질 무렵 한 시간 , 또는 한 시간 반 정도 광야길 탐방은 부담스럽지 않을 것 같다.

 

 

 

 

 

 

 

 

탐방길에 나서며 주변을 둘러보면 광야에서도 꽃을 피워내는  강인한  생명력의 들 꽃들을 만난다.

영국 통치기간 이스라엘 독립을 위해  애쓴 무장단체 하가나 병사들이 물을 파기 위해 사용된 도구도 만난다.

팔레스타인 아랍인들에게 4명 의 하가나 병사들이 1938년에 살해된 장소이다.

 

 

 

 

 

국립공원을 나가는 길에도 친절하게 새롭게 건설된 화장실이 자리하고 있었다. 

꿈란 국립공원은  지난 30년간 가장 발전되어가는 국립공원으로 보인다.

주변 광야도 점점 밭농사를 대규모로 하는 농장이 되어가고 있었다.

국립공원 출구

 

꿈란 국립공원 유적지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물 저장소로 흘러 들어오는 물길도 많이 보수되어 있었고 토기를 굽던 가마와  가축을 키우던 방도 

새롭게 고증을 통해 복원되어 있었다.

사막에서 성경말씀을 필사하며 완전한 거룩함을 추구하며 철저한 율법 생활을 했던 에세네파 공동체(꿈란 공동체 ).

그들이 적어놓은 성경 사본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가장 오래된 성경 사본인 알레포 사본이나 (  925년 )

레닌 그라드 사본 (1008년 )보다 천년이 앞선 가장 오래된 히브리어 성경 사본이다.

그들은 스스로를 "야하드"라는 히브리말로 불렀고 그 "야하드"는 연합이라는 뜻이다.

함께 모여 살아가는 광야의 사람들 , 그들은 금욕 공동체였으며 성전의 타락을 피해 광야로 나온 사람들이었다. 

대 부분의 학자들은 그들이 요세푸스 플라비우스 역사가가 얘기하는 에세네파에 속해  있다고 추측한다.

코로나 비대면 시대에 가장 많은
변화를 보인 곳은 국립공원 들이다.
가는 곳마다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되어있다.
바람직한 태도로 여겨진다.
관광객이 없는 동안에 미뤄두었던 보수 공사와
새로운 탐방길을 열어 해외 관광객이 아닌
국내 여행객들을 초대하고 있었다.
대표적인 성지 탐방지인 꿈란도 예외는 아닌 듯
새로운 모습으로 새 여행객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은 이스라엘 국립공원 광야의 꿈란을 찾아본다.


참고: 1.사해사본과 그리스도교의 기원 ,

        2.국립공원 설명서,

        3.김 상원 테오필로신부님의 블로그.